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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주 들락거리고있는 네이버 디워카페에 위쯔(wich8218)님이 쓰신 글.
본인이 직접 경험하신 얘기를 쓰셨는데 실화라서인지 더욱 실감나면서도 역시 심형래감독님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 퍼왔음.
가장 멋진말에 표시를 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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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심형래 감독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 D-WAR 베스트 후기

2007.08.09 18:06
위쯔(wich8218) 파워킹

저는 현재 20대 중.후반의 직장인 입니다.
언론 매체는 아니지만, IT와 게임 관련 분야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죠.
지금이야 그냥 강남이 있는, 그리고 국내에서 제일 알아주는 커뮤니티 게임 웹진 회사의 기자라는 호칭을 달고 있지만..
10대 후반의 제 모습은 남들이 소위 말하는 "양아치"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10대 후반, 부모님들이 별거를 하시고 저는 아버지와 지내게 되었고 아버지와 지내는 과정에서 힘이 들거나 집을 벗어나고 싶을 때면 주저없이 삼촌 댁으로 향하고는 했습니다.
삼촌 댁은 인천이고, 삼촌이 운영하시던 작은 음식점(분식&한식)은 영등포 구청 역 옆 골목에 있었습니다. (만두가 참 맛있었는데 정육점 바로 옆집)
집을 뛰쳐나와 힘이 든다고 삼촌 댁으로 도망와서, 학교를 가지도 않고 삼촌 가게에 따라 나와서는 배달용 오토바이를 타고 방황을 하거나 또는 주위에 알짱거리는 중학생 여자애들과 히히덕 거리며 담배나 피던 철없는 저였습니다.
물론, 제 본성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좋은 것도 아니지만..
그 당시에 저는 삶의 목표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 물론 게임 관련 커뮤니티 회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도 저는 게임이 마냥 좋았고 그리고 그냥 집에서 억압하는 환경이 싫었고, 별거 중인 부모님들과 사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장 좋아하고 제가 일탈을 간절히 원할 때면 가는 곳이 삼촌댁 가게였죠.
삼촌댁에서 제일 바쁜 시간인 점심 시간에는 배달도 도와드리고, 나름대로 시간을 때우고..이런 식으로 집에 들어가지도 않고 한달 이상을 버티기도 했습니다.

잡설이 길었군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저는 소위 그냥..철없는 양아치 중 하나인 꼬마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삼촌이 저를 부르셨습니다.
  "xx야 영구보러 안갈래?", "아..무슨 영구는 영구에요~"..
그 날이 아마도 국가 공휴일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일요일이 아닌 명절일 거에요 분명히.
삼촌의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듣고 그냥, 얻혀있는 것도 죄송하니 불만없이 배달을 떠났죠. 그 당시 메뉴를 기억합니다. 된장찌게..
제가 배달을 갔던 곳은 골목을 쭉 빠져나와 횡단보도를 지나면 "프라이스 클럽"이라는 쇼핑 센터가 있었고 그곳을 좌측으로 돌아가면 하나의 영화 세트장이 있었는데..
바로 그곳이 "용가리"를 촬영 할 당시의 "영구 아트 무비" 사무실이었습니다.
오 진짜 영구가 있는 거 아냐..? 라는 생각으로 사무실 밖에 있는 인터폰을 눌렀습니다.
처음 출입 자체가 카드 인식으로 문이 열리고 인터폰으로 배달왔다고 하니 이쁜(?)누나가 문을 열어주시더군요 자동 시스템이지만..(지금은 아줌마일려나;;)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올라가니 하나의 사무실이 있었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정말 심형래 감독님이 있던 것입니다.
심형래 감독님은 피곤에 지친 것인지 쇼파에서 잠을 청하고 계시더군요..
저는 평소와 같이 배달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 "저기, 된장찌게 배달왔는데요.."라고 말을 했지만 약간의 미동도 없었고, 음식을 놓으면서 계산을 해달라는 말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어나시더군요.
  "저기, 계산 좀 부탁드려요. 4500원입니다." 라고 말을 하자. "
밖에 있는 아가씨가 계산 해 줄 거에요." 라면서 한참을 멍하게 계시기만 하고 식사는 하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그 때 사무실에 있던 TV에서 우뢰매 3탄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무의식적으로 "어 우뢰매네..얼렁 가서 봐야지" 이러니까, 그제서야 심형래 감독님이 잠을 좀 깨신 것인지 농담 섞인 한 마디를 건냈습니다.
  "학생 나이가 몇인데 우뢰매를 봐. 하하하하"
저는 이렇게 말했죠.
  "제 나이에 우뢰매 안 본 애들이 어디 있어요? 저건 어릴 때나 지금이나 잼있어요. ㅎㅎ"
이렇게 말을 하자. 머쓱한 웃음을 지으시더니..
  "학생 가게 오늘 휴일이라 배달 많이 없지?"
라고 물으셔서, 저는 영문을 모르지만 ,
  "네. 배달은 없는데 왜요?"
라고 여쭈었죠.
그러자, 심형래 감독님이 하시는 말이..
  "우뢰매 보고 가. 내가 가게에 전화해서 말해줄께"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안돼요. 안가면 삼촌한테 혼나요!"라고 말하니, 평소에 삼촌 가게에 배달을 자주 시켜서 삼촌을 잘 아니까 전화하면 이해해 주실 거라면서 전화를 직접 하시더군요. 그리고 삼촌한테 허락도 받아주셨구요.
그래서 정말 영광적인 심형래 감독님 바로 옆에 앉아서 우뢰매를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심형래 감독님은 식사를 하시고 계셧구요.
당시의 용가리 촬영 때 엄청나게 보안을 철저히 한다고 노력하셨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전, 우뢰매를 보고 있느라고 그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최근 심형래 감독님에 대한 이야기와 그리고 언론의 비상식적인 행동들을 보고 갑자기 떠오른 게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어린 나이고 사회에 대하여 잘 모르고, 지금처럼 글을 쓰는 직업도 아니였기 때문에 무엇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습관이 없었던 때입니다.
근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니...심형래 감독님의 열정... 그것을 왜 언론은 예전에 감독님이 활동했던 개그맨의 네임벨류를 이용하여 깍아내리려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정확하게 상황 설명을 하자면 이렇습니다.
쇼파에서 주무시고 있던 심형래 감독님, 식사를 하시던 심형래 감독님, 삼촌에게 전화를 해 주시던 심형래 감독님, 식사를 마치시고 같이 우뢰매를 보시던 심형래 감독님...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그것이 바로 손에 쥐어진 문서입니다.
어릴 때야 단순히 프린트지 정도로만 생각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바로 용가리를 제작할 당시에 관련 문서였을 것이고 자는 순간까지고 그것을 읽고 저와 있다가 제가 나오는 순간까지도 그 문서를 단 한번도 손에서 놓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제가 갔을 때 정말 초췌하고 일명 폐인의 모습을 하고서도 웃어주시고, 우뢰매를 보면서도 직접 음료수를 가져다 주시면서 어릴 때 이야기를 해주시던 감독님.
저한테 해주셨던 한 마디가 기억나네요.
 "내가 우뢰매 찍을 때 말이지 옆돌기 동작을 잘 못해서 집에서 연습을 하다가 허리를 심하게 다쳤거든. 근데 다치고 나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 우뢰매를 좋아하는 애들도 혹시나 다치면 어떻하나 싶어서 동작을 바꿀까 생각도 했었다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신경쓰시고, 그 동작을 따라하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는 마음과, 그리고 정말 낯선 연애인과 옆에 앉아 있는 저의 부담감을 덜어주고자 하시는 농담..그리고 그런 농담을 하면서도 절대 놓지 않는 그 문서들..
왜...심형래 감독님의 열정을 몰라주시나요.
용가리, 망한게 아니라고 하죠. 미국에 비디오로 나와있는 것 자체가 성공이라고 하죠. 용가리 심형래 감독님의 열정과 노고가 들어간 작품입니다. 국내에서 손가락 질 받기 전에 국내에서도 "신지식인" 이라는 칭호를 주면서까지 용가리에 대한 관심이 엄청났었고, 이를 모티브로 한 음식도 나오고..
그렇게 용가리에 열광하다가 용가리에 대한 흠이 하나 보이니, 180도 외면해버리는 국내 영화사..
그런데, 이제는 세계적인 CG를 자체적으로 개발시키고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눈물과 고생을 하며 만든 "디워"를 냉정한 평가가 아닌, 단순히 감독님의 전직을 싸잡아서 욕하는 것을 보니 너무 화가나더군요.
심형래 감독님은 물론이고, 당시에 같이 고생하던 영구아트 분들..이 분들의 노력이 심형래 감독님의 네임벨류 하나 때문에 평가가 저하되는 것이 정말 타당한 것인가요..?
심형래 감독님이 "아리랑"을 엔딩 크레딧에 사용하면 애국심 유발이고, 스필버그나 외국 유명 감독이 엔딩 크레딧에 자국의 국가를 포함하면 그것은 굿 쵸이스(Good Choice)가 되는 것인가요?
제가 달은 댓글에도 있는 말이지만..
괴물이라는 영화를 보고 봉준호 감독님한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아니 보냈죠. 물론 외국의 CG 기술을 이용했지만, 정말 잼있게 보았거든요.
그런데, 그런 봉준호 감독님의 망발로 인하여 인식이 확 바뀌게 되었습니다.
막말로 말해서.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를 심형래 감독님의 CG 기술로 만들었다면, 괴물의 제작 비용은..?
영화인들이 가져가는 막대한 게런티를 제외하고 CG에 50억을 사용했다고 치면..심형래 감독님은 5억이면 충분히 만들 수도 있는 기술력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신 분입니다.
외국의 힘을 빌려서는 발전이 없다는 것을 알고, 비싼 외국 기술력을 가지고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아닌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개발한 국내의 기술력으로 영화를 제작한 것입니다. 정확히는 알지 못해도 외국에서 CG 기술팀이 국내에서 받는 돈은 어마어마하며 만약 디워를 외국 CG 기술팀을 영입해서 촬영했다고 치면 300억의 제작비가 아니라 천억 이상의 제작비가 필요했겠죠.
즉, 외국으로 세어나가는 외화를 막은 효과도 있으며, 국내의 기술력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심형래 감독님을 왜 언론에서는 타당하지도 않는 이유를 내세워 매도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국내 관객들의 수준을 평균 이하로 낮추고, 심형래 감독님의 열정을 단순히 애국심과 돈에 치부된 것으로 포장시키는 충무로 아니..국내 영화계의 모습에 정말 눈물이 납니다.

저 오늘 디워보러 갑니다.
가서 정말 재미가 있던 없던, 심형래 감독님의 노력과 열정을 확인하려 합니다.
영화가 재미 없으면 냉정하게 영화는 별로였다라고 말하겠지만, 심형래 감독이 개발하고 추구해 온 기술력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박수를 치고 올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거요..?

없습니다. 단순히, 영화의 재미 여부와 떠나서 영화가 재미 없으면 단순하게 영화의 내용은 재미가 없었다. 로 끝내주기를 바라는 것이지 심형래 감독님이 노력한 결과물에 대한 기술적 평가와 인간적 평가를 폄하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영화는 재미 없었지만, 기술력은 정말 대단했어. 우리 국내에서도 이제 저런 CG 기술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구나. 대단하다." 라는 감상평이 "영화 재미있습니다. 꼭 보세요. 또는 영화 재미 없습니다." 라는 감상평보다 와닿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리고 제일 싫은 한마디.

"트랜스포머 보다 별로더만 아무리 발악을 해도 외국 CG는 못 따라잡어" 라고 말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CG라는 분야가 어떤 것인지 좀 알고 평가를 하고 비교를 했으면 하구요.
어떤 이유에서건 어느 감독이건 어느 영화이건 그 영화를 정말 초기부터 거지같은 생각과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또한 자금력에만 의존해서 그리고 국내에서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외국에 지원을 요청해서 만든 것들이 아니라면..즉 연구에 의해 개발에 의해 노력에 의해 만들어 진 결과물이라면 모든 것을 제쳐두고 노력을 한 감독님과 스텝진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줄 수 있는 미덕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휴..일 하다가 오늘 기사 쓰던 거 다 날려먹고 한탄하는 거라고 생각해 주세요.

P.S-심형래 감독님. 된장찌게 맛있으셨죠? 저희 숙모가 음식을 좀 잘하셔서..ㅎㅎ 그때 덕분에 우뢰매도 편하게 보고 제 자식이 생긴다면 자식한테 자랑할 것이 두개나 생겼네요. "아들아 디워라는 영화가 국내에서 만들어진 SF영화이고 저 기술력이 세계에 내놔도 뒤쳐지지 않는 바로 국내의 기술력이란다." 라는 말과 "그리고 아빠는 심형래 감독님 옆에서 우뢰매를 본 소수의 어린이들 중 하나란다" 라는 거..별 것 아니고 몇몇 분들이 보시면..미x놈 쌩쇼를 하네. 라고 하시겠지만, 저한테는 정말 그것이 영광이라는 사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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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otA made人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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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의 영화로 보는 세상] '심형래가 아는 한 명뿐인 기자'의 생각 (2)

-이래도 <디워>에 욕만 할 것인가-

솔직히 질적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누군가 이렇게 물었다.

“같은 사람이 <트랜스포머>는 단순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컴퓨터그래픽이 볼 만한 영화 , <디워>는 화려한 컴퓨터그래픽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스토리가 문제라고 쓴 것은 두 영화 사이에 '그래도' 질적 차이가 있기 때문이 아니냐.”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이랬다.

“물론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트랜스포머>와 <디워>의 상반된 말의 배치는 그 단순함의 질이 다르다는 개념의 문제가 아닙니다. 태도의 문제이지요. '반이나 남은 술'과 '반밖에 남지 않은 술'과 같은 것이지요. 긍정적 태도와 부정적 태도가 작은 질의 차이에서 나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 <디워>에 대한 혹독한 비평은 태도의 문제다. 방송에서 천박하게 '꼭지가 돈다'는 상말까지 써가며 심형래 감독을 비웃은 한 문화비평가나 '미국 토스터기 모방품' 으로 비하한 한 영화감독의 태도는 <디워>의 부족함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디워> 존재 자체가 불쾌한, 그래서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싶은 태도로 보여진다.

그것은 그들이 끝없이 반복하는 두 단어로 짐작할 수 있다. 하나는 '없다' 이다. '서사가 없다' '플롯이 없다' '설득력이 없다' '변신에 이유가 없다' '미학이 없다' 등등. 심형래 감독의 과거 유행어 '영구 없다'를 비꼬는 듯한 이 '없다'는 단정은 결국 <디워>가 600만명의 관객을 돌파했고, 그 대부분이 “재미있네”라며 오락상품으로서 영화를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 가치를 부정하려는 태도이다.

물론 그들도 <디워>의 오락성 시장성은 부정할 수 없기에 한편으로 '있다'를 강조한다. '애국주의가 있다' '민족주의가 있다' '바보 영구의 인간적 호소가 있다' '인간극장의 마케팅이 있다'고. 오직 이 영화 외적 요소들만으로 그들은 <디워>의 흥행을 설명하려 한다. '이상 징후, 이해할 수 없는 기현상'이란 표현이 그것이며, <디워>에 만족한 관객들이 분노하는 것도 그 말 속에 숨어있는 '바보들'이란 비아냥거림을 눈치챘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 성격이나 감정, 사사로운 이익이나 위선에서 나온 것이든, 아니면 가치관과 교육에 의해 나온 것이든 태도는 바꾸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디워>에 대한 '없다' 와 '있다'를 고집할 것이다. 결코 영화로서 <디워>를 인정하지 않고 언제나 '기(奇)'나 '이해 불가능'이란 말을 붙일 것이다. 문제는 그 단어 자체가 논리성을 결여한 것이며, 논리적 설명을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그런 태도로 <디워>를 보고 있기에 <디워>의 흥행현상도, 곧 다가올 더 큰 폭발도 논리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들은 <디워>에는 서사가 없다고 비판한다. 왜 서사가 없는가. <디워>는 이무기 전설을 현재화했다. 500년 만에 환생한, 여의주를 지닌 한 여자와 그것을 빼앗아 용으로 승천하려는 악의 이무기의 대결. 이런 영화에 서사가 중요하냐 아니냐는 다음 문제다. 다만 <디워>는 그 서사를 보다 쉽고 정교하게 풀어내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 이유를 과도한 컴퓨터그래픽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책임을 엉뚱한 곳, 그것도 이런 장르영화의 중요한 흥행요소에 돌리는 것이어서 위험하다.

“왜 500년 후의 환생이 하필이면 미국인이냐”는 반문은 미국인 관객이라면 가능하다. 그들은 인간이 죽으면 언제, 어디서, 어떤 존재로든 심지어 식물로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동양의 불교윤회사상을 모르니까.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정반대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미국인들은 “독특하고 재미있다”고 말한다.

<디워>는 전설을 모티프로 했다. 비슷한 장르지만 화석에서 모기가 빤 피를 뽑아 공룡을 부활시킨 과학적 상상력을 동원한 <쥬라기 공원>과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그런데 그 전설과 현실의 결합에서 그들은 <쥬라기 공원>의 비과학적 태도는 외면하고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 것과는 정반대로, <디워>에서는 신화와 전설의 상상력은 무시한 채 현실의 리얼리티(설득력)만 비판한다. '갑자기'란 단어까지 써가며 착한 이무기의 등장과 위기의 해결을 비웃는다. 사실 이런 장치는 신화와 그 속의 영웅 이야기 자체는 물론이고, 선악의 대결구도를 그리는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가 차용하고 있는 공식이다. 바로 그 인간 능력 밖의 힘을 바라는 마음이야말로 인간이 신화와 전설을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디워>는 그 순간 전설이 아닌 현실이어야 할까.

<디워>와 심형래 감독이 “왜 우리만”이라고 하는 것은 10여년 충무로의 비웃음과 무관심을, 심형래 혼자 필름을 들고 외따로 떨어져 비행기에 오르던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괜한 피해의식이나 과장이 아니라고 확신할 것이다. <디워>에 관한한 장르의 특성조차 무시하는, 일관성 없는 비판이 여기저기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디워>는 뮤지컬도, 멜로도, 그렇다고 현실고발영화도, 시대물도, 작가의 색깔이 드러내는 예술영화도 아니다. 그야말로 오락용 괴수영화, SF영화다. 그것도 전설을 소재로 한.

영화에는 모든 요소가 중요하고, 그것이 균형을 이뤄야 하지만 장르마다 조금씩 차이가 난다. 멜로는 배우의 연기와 스토리가, 뮤지컬은 음악이, 역사물은 리얼리티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디워>같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각효과를 최대화 하는 컴퓨터그래픽 특수효과일 것이다. 때문에 스필버그조차 이런 영화에는 유명스타를 쓰지 않는다. 그러면 진짜 심혈을 기울여 창조한 주인공인 공룡과 그들의 액션이 주목을 받지 못하니까. 그런 점에서 <디워>는 심형래 감독의 능력을 떠나 올바른 선택을 한 셈이다. 아마 600만명은 그것을 보고 싶어 극장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한 여자를 잡는 데 그렇게 어마어마한 괴물과 전투가 필요한가라는 비판도 <디워>를 리얼리즘 시각에서 본 오류다. 관객에게 스펙터클한 장면을 통한 시각적 만족을 주려는 동시에 극적 긴장감을 높이려는 당연한 설정이다. 그럼 <반지의 제왕>에서는 왜 그 작은 반지 하나 때문에 수만 대군이 등장하는가. 그 반지가 세상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해서라고? 그럼 여의주는?

민족주의도 그렇다. 형평성도 없고 그 말 자체가 억지다. 영화가 단순한 상품과 다른 이유는 그 속에 가치관, 이념, 문화 등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로부터 한국영화를 지키려고 스크린쿼터 수호를 주장했을 때, 그 근거가 무엇이었나를 생각해 보면 자명하다. <스파이더맨>에서 처음과 마지막 주인공이 성조기 옆에 붙어있는 것은 무엇인가. 수많은 전쟁영화에서 미군들이 국가 연주 속에 성조기에 경례를 붙이는 마지막 장면은 왜일까. 국가대표도 아닌 박세리와 박찬호의 승리에 난리치는 태도는 또 뭔가. 한국영화가 칸영화제에서 수상하기를 그토록 열망했던 이유는 뭔가. 국가 없는, 국가주의 없는 영화란 없다.

설령 심형래와 <디워>가 의도적으로 애국주의에 기댔다고 하자. 마치 그것 하나로 600만명이 영화를 보러 갔다는 발상 자체는 어이가 없다. 이유는 영화관람은 시간적 경제적으로 고비용에 속하기 때문에 관객은 냉정하다는 객관적 사실을 무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만약, 지금으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곧 개봉하는 미국에서 <디워>가 흥행에 성공할 경우에도 이를 애국주의로 설명할 것인가.

심형래의 인간적인 호소력(진중권은 이를 '인간극장'이라고 비꼬았다)도 그렇다. “심형래가 만들었으니 봐줘야 하지 않느냐”를 비판하려면 “임권택 영화니까 봐야 한다”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심형래는 코미디언 출신이고, 임권택 감독은 한국이 낳은 거장이어서? <천년학>은 예술이고, <디워>는 오락이니까 차원이 다르다고? 다른 것은 차원이 아니라 장르이고, 영화가 목표하는 길이다. 이 세상에 남의 돈으로 영화 만들면서 흥행을 노리지 않는 사람이란 없다. <천년학>이 어렵게 한길을 걸어온 임감독의 100번째 작품이라면, <디워>는 어렵게 한길을 걷고 있는 심형래의 작품이다. 완성도가 다르다고?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혹시 일부 평론가나 언론들이 감독의 무게에 짓눌려서 그런 건 아닐까. 아니면 그렇게 해야예술을 아는,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눈이 높다는 자의식 때문은 아닐까.

그 인간적인 것과 무게야말로 영화를 영화로만 보지 못하게 한다. 이런 영화들이 있다. 그 영화를 영화적으로 비판하면 마치 그 영화가 담고 있는 소재 주제 인물 의식을 비판하는 것으로 오해 받기 쉬운. 과거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그랬고, <화려한 휴가>가 그렇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가 그렇다. 단지 5ㆍ18을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화려한 휴가>가 완성도가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그런데 그 영화를 영화적으로 비판하면 마치 5ㆍ18민주화운동을 비판하는 듯한 분위기가 분명 존재하고 있다.

바로 이게 영화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디워>를 순 우리기술, 심형래, 첫 미국 대규모 개봉 등의 외부요인을 빼고 영화로만 보지 않는 이유다. 사람들이 “심형래 것이니까”하고 극장으로 가는 이유다. 그들이 “영화는 영화로 보라”는 말이 편의적 발상이라고 여기는 이유다.

<디워>는 분명 영화 그 자체로 흥행요인이 있다. 90분 간 컴퓨터그래픽의 시각효과로만 지금의 관객동원과 만족도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캐릭터, 소재, 정서, 스토리에도 분명 흥행의 코드가 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애국주의, 민족주의, 인간적 호소력이 보태져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디워>는 또 분명 잘 만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심형래의 큰소리에 비해 부족하다. 그렇다고 눈 앞에 있는 것을 없다고 몰아치는 것은 <디워>의 내일을 위해서도, <디워>의 자리매김에도, 한국영화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 자존심도 아니다. 단지 오만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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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otA made人P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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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의 영화로 보는 세상] '심형래가 아는 한 명뿐인 기자'의 생각(1)

-'심형래가 아는 한 명뿐인 기자'의 생각-

수백명의 기자와 카메라 불빛 속에서, 그것도 멀찍이 앉아 있는 사람을 발견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더구나 공식석상에서 그런 말까지 하리라고는.
그러나 <디워> 시사회장에서 심형래는 나를 봤고, 그리고 “7년 만에 매스컴이 다 바꿨다”며 “아는 기자는 한국일보 이대현 하나 밖에 안 남았다. 아직도 안 잘리고 버티고 있다”는 말로 좌중을 웃기며 기자회견을 시작했다.(사실 그가 아는 기자가 한명 더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때 화장실에 갔다.)

왜 그랬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다만 온갖 억측에 시달리며 40대 대부분의 세월을 쏟아 완성한 <디워> 품평회 자리에 앉은 심형래로서는 자기가, 자기를 ‘모르는 자들’에 대한 두려움을 그렇게 대신한 것은 아닐까 추측했다.

아니나 다를까, <디워>에 대한 그들의 애정 없는 말과 글들은 혹독했다. 스토리, 디테일은 물론 감독으로서 심형래의 의지, 열정에까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자 이번에는 저예산동성애영화의 감독(이송희일)과 제작자(김조광수)까지 가세해 심형래가 민족주의와 맹목적 애국주의에 기댔다며 침을 뱉는가 하면, <디워>에 열광하는 네티즌들을 이성을 잃은 ‘막가파’로 몰아부쳤다. 물론 그들의 비판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디워>는 부족하고, 네티즌들의 열광에는 맹목성도 있을 것이고, 영화 마지막 자막이 말해주듯 심형래가 그것을 자극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비판이 ‘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심형래가 ‘아는 한명뿐인 기자’ 로서, 뒤집어보면 20년 가까이 때론 취재원 때론 친구로서 그를 ‘아는’ 기자로서 서너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무지이고, 둘째는 무례이고, 셋째는 무원칙이고, 넷째는 획일성이다.

제작비 얘기부터 해보자. 그 많은 돈을 심형래가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알기는 하는가. 그가 밝히기 꺼리는 가족(특히 형)이 없었다면 <디워>는 세상에 나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충무로야말로 다 된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은 격에 불과해 보인다.

열정도 그렇다. 한때 입이 돌아갈 정도로 고생한 것은 차지하고라도, 지금 충무로 컴퓨터그래픽 대부분이 그의 영화사(영구아트무비) 출신들의 손에서 나올 만큼 한 분야를 키워온 열정과 공로를 왜 외면하려 하는지. 언어는 또 왜 그렇게 천박한지. 그래 놓고 네티즌들을 욕할 것인가.

<트랜스포머>는 ‘엉성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컴퓨터그래픽이 돋보인다’, <디워>는 ‘화려한 컴퓨터그래픽에도 불구하고 단조로운 스토리가 문제’. 같은 사람이 쓴 글이다. 무원칙은 또 있다.

심형래를 키타노 다케시에 비교했다. 같은 코미디언이지만 만드는 영화의 장르가 전혀 다른데. 굳이 비교해 욕하고 싶다면 스필버그나 마이클 베이여야 하지 않을까. 민족주의도 그렇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스크린쿼터 사수를 외치며 “한국영화니까 봐줘야 한다”고 소리치던 제작자가 아닌가.

한 신문은 개봉 6일만에 <디워>가 관객 300만명을 돌파하자 ‘바보영구의 민족주의적 인간승리’ ‘평단과 언론의 한결 같은 저평가 속에 이뤄진 것이라 더욱 눈길’ ‘노골적인 애국심 호소가 가장 큰 흥행 요인’ 이라고 주장했다. 무섭다. 자신의 잣대를 세상 잣대로 착각하는 것이며, 관객을 전부 바보로 여기는 것이며, 작품 속에서 흥행요소를 찾아보려고 조차 하지않는 태도하며. 어쩌면 이렇게 어디와 닮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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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래 감독과 ‘디워’는 충무로의 귀한 자산이
그를 충무로와 괴리시키는 것은 불순한 착각이다
입력 :2007-08-11 15:45:00     |  이석원 편집국장 e-mail
마침내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워’에 대한 논쟁이 극점에 다다른 느낌이다. 10일 새벽 방송된 MBC ‘100분 토론’이 바로 ‘디워’ 논쟁의 정점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워낙 논란의 파워가 강한 탓이었는지 ‘100분 토론’의 시청률도 평소의 3배를 넘었다는 보도를 보면서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디워’ 파워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방송이 나간 후 10일 아침에는 이날 토론의 패널인 진중권 교수와 칼럼니스트 하재근 씨도 네이버와 다음의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랭크되기도 했다. 진 교수야 이전에도 몇 번 검색어에 오른 경험이 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하재근 칼럼니스트는 내 기억으로는 검색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것이 처음 아닌가 싶다.

하재근 씨는 내가 몸 담고 있는 데일리서프라이즈의 고정 칼럼 필진이기에 반가움이라는 단순한 감정도 있었지만 그가 영화 평론가도 아니면서 ‘디워’에 대한 글 한 번 쓴 것 때문에 이 같은 대우(?)를 받게 된 것을 보면서 새삼 ‘디워’가 2007년 8월 한국 사회에서 어떤 파급력을 갖는지에 대해 탄성을 자아낼 뿐이다.

하지만 ‘디워’를 토론한 ‘100분 토론’을 얘기하고자 키보드를 만진 것은 아니다. 심형래 감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심형래 감독과 영화 <디워>에 대한 논쟁은 그 접근점이 잘못돼 있다. ⓒ뉴시스 

심형래 감독과는 많지는 않지만 또 적지 않은 인연이 있다. 하긴 1990년대에서 2000년 초까지 영화담당 기자를 해봤던 자들 중에서 심 감독과 인연이 없는 사람도 별로 없긴 할 것이다. 그만큼 심 감독은 어느 순간부터 한국 영화계의 나름대로 한 자리를 차지하는 중요한 인물이었던 셈이다.

심형래 감독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물론 방송사에서다. 그는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이었다. 돈도 잘 벌었고, 인기도 천정부지였다. 당시 한국 코미디에서 심형래는 구봉서 서영춘 배삼룡을 잇는 확실한 대들보였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그는 영화 작업을 계속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를 영화감독으로 만나게 된 것은 1994년 무렵이 아닌가 싶다.

당시 심 감독은 필생의 역작인 ‘티라노의 발톱’이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는 영화계에 지금과 같은 펀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투자라고 해야 대체로 지방 배급업자들이나 극장주, 또는 몇몇 개인적으로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이 추렴해서 영화를 만드는 게 대부분 이었다. 하지만 정통 영화인도 아닌 개그맨 심형래에게 투자를 하는 사람은 것의 없었다.

개그맨으로서 하루에도 10여 군데의 밤무대를 뛰면서 번 돈으로 심형래는 영화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전에 만들었던 우뢰매 시리즈나 영구 시리즈와는 다른 느낌으로 그는 공룡 영화를 만들고자 시도하고 있었다.

당시 심 감독이 설립한 영화사인 영구아트무비 사무실이 방배동 카페 골목 안에 있었다. 기자들이 수시로 그곳을 드나들었는데 인심 좋은 심 감독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찾아오는 기자들을 박대하는 법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찾아오는 기자들에게 밥 한 그릇에 소주 한잔은 대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방배동 카페 골목 안의 아구찜 집을 이용했다. 그곳에서 하루는 심 감독이 눈물을 보인 적이 있다.

심 감독은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 공룡 영화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 하소연을 폈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는 바였다. 심 감독이 눈물을 흘렸던 진짜 이유는 공룡 영화가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그는 영화계에서는 확실한 ‘왕따’였던 것이다. 그래서 영화사 사무실도 충무로가 아닌 방배동에 차렸다는 후문도 있다.

즉 영화계에서는 ‘싸구려 어린이 상업영화’를 만드는 개그맨을 곱게 봐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품성도 완성도도 없는 영화를 만들어서 한국영화의 평균을 깎아먹는다는 심 감독에 대한 편견, 돈 벌어 놓은 것 좀 있다고 거드름 피면서 영화로 장난질하는 개그맨이라는 조롱, 후배 개그맨들을 대거 기용하면서 출연료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혹사를 시킨다는 중상모략까지 당시 한국 영화계는 분명 심형래를 영화감독이 아닌 ‘싸구려 망둥이’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기자들 사이에서도 영구아트무비를 찾아갔다는 사실을 비밀에 붙이는 경우도 있다. 당시 할리우드 직배 영화와의 처절한 싸움, 현격히 줄어든 한국영화 제작 편수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던 영화계에서는 심 감독에 대한 일종의 질시로 “심형래는 기자들이 찾아가기만 하면 촌지로 도배한다”는 소문까지 충무로에 퍼졌던 탓이다.

그 시절 분명 심형래 감독에 대한 충무로, 즉 한국영화계의 질시는 대단했다. 즉 심형래는 영화계의 인물이 아니었고, 그의 작품들은 한국영화의 통계에 조차 넣기 부끄러운 사생아였던 것이다.

1999년 심 감독은 ‘용가리’를 만들어냈다. 글로벌한 그의 마인드가 발휘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덕에 그는 국민의 정부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신지식인 1호’라는 대단한 칭호가까지 받았고, 대학을 돌아다니면서 강연도 했다. ‘바보 영구’가 엄청난 변태를 한 것이다.

당시 영구아트문화재단이라는 것을 만드는 자리에서 심 감독을 오랜만에 만났다. 이미 웬만한 자리에서는 형님 동생으로 호칭했던 터라 반갑게 “형래 형님, 축하합니다”라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데 그의 옆에는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박지원 전 장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놀랍게 변한 심 감독의 위상에 대해 입이 딱 벌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의 첫 글로벌 작업이었던 ‘용가리’는 완전 실패를 했다. 할리우드에서 처절할 만큼 혹평을 받은 것은 물론 해외 그 어떤 마켓에서도 ‘용가리’를 사는 사람은 없었다. 아울러 국내 영화관에서도 ‘용가리’는 참담한 실패의 역사였다. 국민의 정부 신지식인 1호 심형래가 무너졌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엄청난 빚더미 위에 앉아버렸다.

그 때 영화계와 언론은 또 다시 심형래 타작하기에 나섰다. 심형래의 허황된 꿈이 졸렬한 작품을 만들어 놓고 상승 기류였던 한국 영화계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혹평이 난무했다. 아마도 심 감독의 가슴에 수십 개의 비수가 날아들어 꽂혔을 것이다. 그리고 10여년의 세월이 지났다.

8월 초 ‘디워’가 개봉하면서 한국영화계는 이상한 싸움이 생겼다. 바로 심형래 감독과 충무로로 대변되는 한국영화계의 싸움인 것이다. 심 감독이 방송 오락 프로그램 등에 출연해서 “심형래가 만든 작품이라 개봉도하기 전에 망할 것이라고 말한다”거나 “개그맨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영화계의 홀대를 받았다”는 등의 말을 하면서 촉발된 것이다.

일부 팬들은 심 감독의 말을 들으면서 “한국영화계가 정말 못됐구나”라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디워’와 ‘화려한 휴가’를 대결시키기까지 했다.(물론 이는 일부 전두환 추종세력이 조장한 듯한 인상이 강하기는 하지만 이런 흐름에 부화뇌동하는 대중들도 적지 않아 보인다)

이런 모습들은 마치 과거 할리우드 직배 영화와 한국영화의 대결 구도로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히 이는 잘못됐다. 심 감독의 ‘디워’는 분명 한국영화다. 그 작품이 잘됐거나 못됐거나 소중한 한국영화의 한 역사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심형래라는 인물도 한국영화에 중요한 획을 긋는 감독의 역사다. 불모지대나 다름없는 SF영화의 수준을 끌어올리고자 고군분투했던 실험성 강한 영화감독인 것이다.

이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 감독이 ‘디워’의 개봉을 앞두고 털어놓았던 몇 마디의 푸념은 말 그대로 그동안 겪었던 아픔에 대한 넋두리일 따름이다. 심 감독 본인이 자신은 한국영화계의 인물이 아니라거나, ‘디워‘가 한국영화와 척을 지는 별종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 이석원 편집국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두 사람의 평가와 비판을 가지고 이미 일반 대중들은 심형래 감독을 한국영화와 괴리를 시키고 있다. 그리고 또 어떤 세력은 이런 점을 자신의 주관적 정치성에 이용하고 있다.

만약 ‘디워’가 ‘괴물’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흥행 신기록을 세웠을 때 한국영화계가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땅을 칠 리가 있을까? 각종 영화제에서 ‘디워’를 한국영화가 아닌 또 다른 별종으로 제외시킬 리가 있을까? 난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디워’가 흥행신기록을 향해 나아가면 그에 맞춰 흥분할 것이고 흥행신기록을 세운다면 한국영화계 전체가 크게 기뻐할 것이다.

심형래 감독은 분명 이전에 당한 설움이 있다. 어쩌면 그 설움을 바탕으로 지금의 ‘디워’가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그 설움이 시간들을 귀중하게 보관하고 있을 것이다. 또 이를 바탕으로 더 진보된 SF영화를 만들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심 감독을 충무로와 괴리시키는 말도, 그를 별종으로 떼어놓고 이야기하는 태도도 없어야 한다. 그와 한국영하는 상생의 동지요, 하나로 뭉쳐진 그 일원임을 각인해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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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라면 꼬맹이에서부터 성인까지 모두의 로망, 변신로봇.
그 상상속의 메카닉들을 현실세계 속에 실감나도록 재현해냈다.
철컥철컥 이리저리 정신없이 분리되고 접히고 돌리고 합치고....
멋진 영화이긴 했지만 관람중에, 그리고 관람 후에 느낀 몇가지 문제점들.
(주저러주저리 썼었는데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자삭했음 ㅡ.ㅡ;)
암튼 어릴적 무한한 상상속의 변신로봇을 현실에(비록 영화지만) 그럴듯하게 구현한 것 자체로 이 영화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생각보다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스케일의 웅장함이 거의 없어 조금은 밋밋하고 심심한 느낌이 든다는게 단점이고 거대한 로봇들의 덩치에 걸맞지않는 우스운 연기(?)들이 약간의 양념 역활을 해주는 듯 하다.

★★★★☆

사실 심형래감독의 'D-WAR'가 트랜스포머 때문에 평이 떨어질거라고들 했으나 트랜스포머를 본 뒤로 오히려 난 'D-WAR'에 대한 기대치가 더 커졌다.
사실 'D-WAR'의 스토리 전개가 엉성하다고들 하지만, 이런 헐리우드 블럭버스터도 스토리 면에서는 크게 좋은 평은 듣지못하고있다. (사실 오락용 액션영화에서 스토리까지 찾는건 무리다.)
이에 대한 내용은 'D-WAR'를 본뒤에나 다시 함 끄적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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