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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줏었다

심형래 감독과 '디워'는 충무로의 귀한 자산

by 고창달맞이꽃 2007.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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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래 감독과 ‘디워’는 충무로의 귀한 자산이
그를 충무로와 괴리시키는 것은 불순한 착각이다
입력 :2007-08-11 15:45:00     |  이석원 편집국장 e-mail
마침내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워’에 대한 논쟁이 극점에 다다른 느낌이다. 10일 새벽 방송된 MBC ‘100분 토론’이 바로 ‘디워’ 논쟁의 정점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워낙 논란의 파워가 강한 탓이었는지 ‘100분 토론’의 시청률도 평소의 3배를 넘었다는 보도를 보면서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디워’ 파워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방송이 나간 후 10일 아침에는 이날 토론의 패널인 진중권 교수와 칼럼니스트 하재근 씨도 네이버와 다음의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랭크되기도 했다. 진 교수야 이전에도 몇 번 검색어에 오른 경험이 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하재근 칼럼니스트는 내 기억으로는 검색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것이 처음 아닌가 싶다.

하재근 씨는 내가 몸 담고 있는 데일리서프라이즈의 고정 칼럼 필진이기에 반가움이라는 단순한 감정도 있었지만 그가 영화 평론가도 아니면서 ‘디워’에 대한 글 한 번 쓴 것 때문에 이 같은 대우(?)를 받게 된 것을 보면서 새삼 ‘디워’가 2007년 8월 한국 사회에서 어떤 파급력을 갖는지에 대해 탄성을 자아낼 뿐이다.

하지만 ‘디워’를 토론한 ‘100분 토론’을 얘기하고자 키보드를 만진 것은 아니다. 심형래 감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심형래 감독과 영화 <디워>에 대한 논쟁은 그 접근점이 잘못돼 있다. ⓒ뉴시스 

심형래 감독과는 많지는 않지만 또 적지 않은 인연이 있다. 하긴 1990년대에서 2000년 초까지 영화담당 기자를 해봤던 자들 중에서 심 감독과 인연이 없는 사람도 별로 없긴 할 것이다. 그만큼 심 감독은 어느 순간부터 한국 영화계의 나름대로 한 자리를 차지하는 중요한 인물이었던 셈이다.

심형래 감독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물론 방송사에서다. 그는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이었다. 돈도 잘 벌었고, 인기도 천정부지였다. 당시 한국 코미디에서 심형래는 구봉서 서영춘 배삼룡을 잇는 확실한 대들보였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그는 영화 작업을 계속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를 영화감독으로 만나게 된 것은 1994년 무렵이 아닌가 싶다.

당시 심 감독은 필생의 역작인 ‘티라노의 발톱’이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는 영화계에 지금과 같은 펀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투자라고 해야 대체로 지방 배급업자들이나 극장주, 또는 몇몇 개인적으로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이 추렴해서 영화를 만드는 게 대부분 이었다. 하지만 정통 영화인도 아닌 개그맨 심형래에게 투자를 하는 사람은 것의 없었다.

개그맨으로서 하루에도 10여 군데의 밤무대를 뛰면서 번 돈으로 심형래는 영화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전에 만들었던 우뢰매 시리즈나 영구 시리즈와는 다른 느낌으로 그는 공룡 영화를 만들고자 시도하고 있었다.

당시 심 감독이 설립한 영화사인 영구아트무비 사무실이 방배동 카페 골목 안에 있었다. 기자들이 수시로 그곳을 드나들었는데 인심 좋은 심 감독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찾아오는 기자들을 박대하는 법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찾아오는 기자들에게 밥 한 그릇에 소주 한잔은 대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방배동 카페 골목 안의 아구찜 집을 이용했다. 그곳에서 하루는 심 감독이 눈물을 보인 적이 있다.

심 감독은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 공룡 영화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 하소연을 폈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는 바였다. 심 감독이 눈물을 흘렸던 진짜 이유는 공룡 영화가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그는 영화계에서는 확실한 ‘왕따’였던 것이다. 그래서 영화사 사무실도 충무로가 아닌 방배동에 차렸다는 후문도 있다.

즉 영화계에서는 ‘싸구려 어린이 상업영화’를 만드는 개그맨을 곱게 봐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품성도 완성도도 없는 영화를 만들어서 한국영화의 평균을 깎아먹는다는 심 감독에 대한 편견, 돈 벌어 놓은 것 좀 있다고 거드름 피면서 영화로 장난질하는 개그맨이라는 조롱, 후배 개그맨들을 대거 기용하면서 출연료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혹사를 시킨다는 중상모략까지 당시 한국 영화계는 분명 심형래를 영화감독이 아닌 ‘싸구려 망둥이’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기자들 사이에서도 영구아트무비를 찾아갔다는 사실을 비밀에 붙이는 경우도 있다. 당시 할리우드 직배 영화와의 처절한 싸움, 현격히 줄어든 한국영화 제작 편수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던 영화계에서는 심 감독에 대한 일종의 질시로 “심형래는 기자들이 찾아가기만 하면 촌지로 도배한다”는 소문까지 충무로에 퍼졌던 탓이다.

그 시절 분명 심형래 감독에 대한 충무로, 즉 한국영화계의 질시는 대단했다. 즉 심형래는 영화계의 인물이 아니었고, 그의 작품들은 한국영화의 통계에 조차 넣기 부끄러운 사생아였던 것이다.

1999년 심 감독은 ‘용가리’를 만들어냈다. 글로벌한 그의 마인드가 발휘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덕에 그는 국민의 정부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신지식인 1호’라는 대단한 칭호가까지 받았고, 대학을 돌아다니면서 강연도 했다. ‘바보 영구’가 엄청난 변태를 한 것이다.

당시 영구아트문화재단이라는 것을 만드는 자리에서 심 감독을 오랜만에 만났다. 이미 웬만한 자리에서는 형님 동생으로 호칭했던 터라 반갑게 “형래 형님, 축하합니다”라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데 그의 옆에는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박지원 전 장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놀랍게 변한 심 감독의 위상에 대해 입이 딱 벌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의 첫 글로벌 작업이었던 ‘용가리’는 완전 실패를 했다. 할리우드에서 처절할 만큼 혹평을 받은 것은 물론 해외 그 어떤 마켓에서도 ‘용가리’를 사는 사람은 없었다. 아울러 국내 영화관에서도 ‘용가리’는 참담한 실패의 역사였다. 국민의 정부 신지식인 1호 심형래가 무너졌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엄청난 빚더미 위에 앉아버렸다.

그 때 영화계와 언론은 또 다시 심형래 타작하기에 나섰다. 심형래의 허황된 꿈이 졸렬한 작품을 만들어 놓고 상승 기류였던 한국 영화계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혹평이 난무했다. 아마도 심 감독의 가슴에 수십 개의 비수가 날아들어 꽂혔을 것이다. 그리고 10여년의 세월이 지났다.

8월 초 ‘디워’가 개봉하면서 한국영화계는 이상한 싸움이 생겼다. 바로 심형래 감독과 충무로로 대변되는 한국영화계의 싸움인 것이다. 심 감독이 방송 오락 프로그램 등에 출연해서 “심형래가 만든 작품이라 개봉도하기 전에 망할 것이라고 말한다”거나 “개그맨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영화계의 홀대를 받았다”는 등의 말을 하면서 촉발된 것이다.

일부 팬들은 심 감독의 말을 들으면서 “한국영화계가 정말 못됐구나”라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디워’와 ‘화려한 휴가’를 대결시키기까지 했다.(물론 이는 일부 전두환 추종세력이 조장한 듯한 인상이 강하기는 하지만 이런 흐름에 부화뇌동하는 대중들도 적지 않아 보인다)

이런 모습들은 마치 과거 할리우드 직배 영화와 한국영화의 대결 구도로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히 이는 잘못됐다. 심 감독의 ‘디워’는 분명 한국영화다. 그 작품이 잘됐거나 못됐거나 소중한 한국영화의 한 역사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심형래라는 인물도 한국영화에 중요한 획을 긋는 감독의 역사다. 불모지대나 다름없는 SF영화의 수준을 끌어올리고자 고군분투했던 실험성 강한 영화감독인 것이다.

이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 감독이 ‘디워’의 개봉을 앞두고 털어놓았던 몇 마디의 푸념은 말 그대로 그동안 겪었던 아픔에 대한 넋두리일 따름이다. 심 감독 본인이 자신은 한국영화계의 인물이 아니라거나, ‘디워‘가 한국영화와 척을 지는 별종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 이석원 편집국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두 사람의 평가와 비판을 가지고 이미 일반 대중들은 심형래 감독을 한국영화와 괴리를 시키고 있다. 그리고 또 어떤 세력은 이런 점을 자신의 주관적 정치성에 이용하고 있다.

만약 ‘디워’가 ‘괴물’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흥행 신기록을 세웠을 때 한국영화계가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땅을 칠 리가 있을까? 각종 영화제에서 ‘디워’를 한국영화가 아닌 또 다른 별종으로 제외시킬 리가 있을까? 난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디워’가 흥행신기록을 향해 나아가면 그에 맞춰 흥분할 것이고 흥행신기록을 세운다면 한국영화계 전체가 크게 기뻐할 것이다.

심형래 감독은 분명 이전에 당한 설움이 있다. 어쩌면 그 설움을 바탕으로 지금의 ‘디워’가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그 설움이 시간들을 귀중하게 보관하고 있을 것이다. 또 이를 바탕으로 더 진보된 SF영화를 만들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심 감독을 충무로와 괴리시키는 말도, 그를 별종으로 떼어놓고 이야기하는 태도도 없어야 한다. 그와 한국영하는 상생의 동지요, 하나로 뭉쳐진 그 일원임을 각인해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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