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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com

[시] 늙어가는 아내에게

by 고창달맞이꽃 2008.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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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아내에게


 

황지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아

그냥, 그래

그냥 살지

그냥 서로를 사는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 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 주었지

그런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 알 한 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 곳은 비어있는 만큼 그대의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 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 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 하는 것 임을

한 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 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은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 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 할 수 있을 때


그 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 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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