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관객들의 정신을 빼놓는 요즘 영화들.
가끔 그런 영화들에 지치기도 하는데 우연히 발견한 영화에서 쉼을 얻었다.
몽골의 드넓은 초원에서 가족들과 한가롭게 살아가는 곰보의 게르(몽골 천막집) 근처에 졸음운전으로 강에 트럭을 처박아버린 세르게이가 등장한다.
차를 빼기엔 늦은 시간이라 세르게이를 말에 태워 게르로 돌아온 곰보는 양을 잡아 푸짐하게 식사대접을 하게되는데 그 자리에서 양을 잡는 모습을 본 세르게이는 기겁하지만 곰보 가족들의 꾸밈없는 배려에 마음을 녹이고 그들의 식사에 함께한다.
오래전 군악대로 활동했던 세르게이는 곰보의 딸 부르마가 연주하는 아코디언 소리에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보인다.
그렇게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익숙해지고 곰보는 다음날 트럭을 꺼내고 집안에 필요한 물품을 사기위해 세르게이의 차에 함께 올라 읍내로 나가게 된다.
읍내에서 곰보는 흡사 오랜만에 장에 나온 어린아이처럼 길거리 음식을 사먹거나 놀이기구를 타기도 하며 나름 소소하게 문명을 즐긴다.
경찰서에 소란행위로 잡혀간 술취한 세르게이를 빼내고 필요한 물품을 장만해 집으로 돌아가는데...
제목인 '우르가'는 포스터에 보이는 끝에 줄이 연결된 긴 장대인데 가축들을 잡을 때 사용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땅에 곧게 꽂아두면 남녀간에 애정행위를 하고있으니 방해하지말라는 표시가 되기도 한다.
곰보네 가족은 아이가 3명인데 중국에선 자녀를 하나만 두도록 하고있어 이미 위험한 상황이지만 곰보는 아이를 더 갖기 원하고 있지만 도시에서 시집온 아내는 안된다고 곰보를 멀리하기만 한다.
결국 읍내에서 돌아온 곰보는 우르가를 꼽고 원하던 아이를 낳게되는데 과정이 없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그 새로 태어난 아이가 어른이 되어 회상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당시 우르가를 꽂았던 곳엔 공장의 굴뚝이 세워져 연기를 뿜고 있다.
에덴동산과도 같았던 그곳에 공장이 들어선 모습에 왠지 서글픔이 느껴졌다.
곰보는 아이들에게 몽골인을 설명하며 징키스찬의 후예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 찬란하던 몽골의 위엄은 간데없이 이리 유목민으로 전락한 현실에서도 내 일처럼 서글픈 감정을 느꼈다.
영화를 보고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고 평온해짐을 느낀다.
아마 귀농을 하지않았더라면 훨씬 더 그러한 느낌이 강렬했지 않을까 싶다^^
몸과 마음이 바쁜 이들에게 '우르가'를 보며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을 갖으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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